GM-CSF를 차단하는 신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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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구 성장인자에서 자가면역 치료 표적까지
같은 단백질이 약이 되기도 하고 치료 표적이 되기도 하다
1980년대 초, 호주 WEHI(Walter and Eliza Hall Institute)의 Don Metcalf 교수 연구팀은 GM-CSF(Granulocyte-Macrophage Colony-Stimulating Factor)를 발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GM-CSF는 백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성장인자로 알려졌고, 항암치료 후 감소한 백혈구를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실제로 GM-CSF는 조혈모세포 이식과 항암치료 이후 면역세포 회복을 돕는 치료제로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연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GM-CSF는 단순히 백혈구를 만드는 단백질이 아니라, 면역반응의 강도를 조절하는 핵심 신호물질이었던 것입니다.
면역세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만든다
초기의 연구에서는 GM-CSF가 골수에서 과립구와 대식세포를 만드는 성장인자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면역학이 발전하면서 연구자들은 GM-CSF가 이미 존재하는 면역세포의 행동까지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대식세포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를 증가시키며
- 단핵구를 염증 부위로 끌어들이고
- 수지상세포의 항원제시 기능을 강화합니다.
즉, GM-CSF는 단순히 면역세포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면역반응 전체를 증폭시키는 '마스터 스위치'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류마티스관절염에서 시작된 새로운 발상
가장 먼저 주목받은 질환은 류마티스관절염(Rheumatoid Arthritis)이었습니다.
관절 안에서는 많은 대식세포가 GM-CSF의 영향을 받아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TNF, IL-1, IL-6와 같은 강력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합니다.
이러한 만성 염증은 연골과 뼈를 서서히 파괴하면서 관절 기능을 악화시킵니다.
연구자들은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GM-CSF가 염증을 시작하는 신호라면, 처음부터 GM-CSF를 차단하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종류의 치료제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GM-CSF를 차단하는 항체 신약의 등장
기존의 생물학적 제제들이 TNF나 IL-6를 표적으로 삼았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상위 단계에 위치한 GM-CSF를 겨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후보 약물로는 다음과 같은 단클론항체가 개발되었습니다.
- Namilumab
- Otilimab
- Lenzilumab
- Mavrilimumab(GM-CSF 수용체 표적)
이들 약물은 류마티스관절염을 비롯한 다양한 염증성 질환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었으며, GM-CSF가 실제 치료 표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COVID-19 팬데믹에서 다시 주목받다
2020년 COVID-19 팬데믹은 GM-CSF 연구를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만들었습니다.
중증 환자들은 바이러스 자체보다도 과도하게 활성화된 면역반응 때문에 폐 손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른바 Cytokine Storm입니다.
연구자들은 GM-CSF가 이러한 과도한 염증반응을 유도하는 중요한 신호 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여러 항-GM-CSF 항체들이 중증 COVID-19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갔습니다.
비록 결과는 질환과 환자군에 따라 달랐지만, GM-CSF가 현대 면역치료의 핵심 표적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WEHI가 다시 연결되다
흥미롭게도 WEHI 연구진은 또 다른 질환에서도 GM-CSF의 역할을 발견했습니다.
2018년 Circulation에 발표된 연구에서 연구팀은 급성 류마티스열 환자의 면역세포를 분석한 결과, IL-1β가 GM-CSF를 생성하는 CD4 T세포를 과도하게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는 왜 A군 연쇄상구균(Group A Streptococcus)이 사라진 뒤에도 염증이 계속되는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면역기전을 제시했습니다.
추가적으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Hydroxychloroquine이 실험실 연구에서 이 염증 경로를 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급성 류마티스열(ARF) 치료를 위한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같은 단백질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GM-CSF가 항상 나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염 초기에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병원체를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반면 자가면역질환에서는 과도한 염증을 유발하고, 일부 암에서는 면역억제세포(MDSC)의 생성을 촉진해 암세포가 면역반응을 피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같은 분자가 상황에 따라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질병을 악화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기초과학이 새로운 치료제를 만든다
Don Metcalf 교수가 GM-CSF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수십 년 뒤 과학자들이 바로 그 단백질을 차단하는 신약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현대 생의학 연구가 발전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생리학적 기능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후 질병에서의 역할이 밝혀지며, 마침내 새로운 치료 표적으로 이어집니다.
GM-CSF의 이야기는 한 분자의 발견이 어떻게 면역학, 자가면역질환, 암, 감염, 그리고 신약 개발까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