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HI가 배출한 세 명의 래스커상 수상자: 버넷, 메트칼프,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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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HI, 래스커상 3인의 계보

호주 멜버른, 그것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연구소가 노벨상급 과학자를 세 명이나 배출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저는 지금 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멜버른 파크빌의 플레밍턴 로드를 걷다 보면 월터 앤 엘리자 홀 의학연구소(Walter and Eliza Hall Institute of Medical Research, WEHI)를 지나치게 됩니다 — 놀랍게도 지난 70년간 세 명의 앨버트 래스커상(Albert Lasker Award) 수상자를 배출한, 바로 제가 일하는 곳이에요. 래스커상은 흔히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립니다. 기초의학연구 및 임상의학연구 부문에서 수상한 90여 명의 과학자 중 상당수가 이후 노벨상까지 거머쥐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래스커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과학계는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머지않아 노벨상 소식이 뒤따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이 세 명의 래스커상 수상자는 모두 같은 멜버른의 한 연구소 출신입니다. 이는 단순한 흥미로운 사실을 넘어, 과학 문화가 세대를 거듭하며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 연구로서 곱씹어볼 만한 패턴이에요.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연구자로서, 대체 이 연구소가 그토록 오랫동안 무엇을 제대로 해온 것인지, 저 역시 궁금해졌다. 그 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서로 전혀 다른 이 발견들을 은밀히 연결하는 고리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게요.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 경 (1952년)

버넷은 면역학과 바이러스학 분야의 기초 연구로 기초의학연구 부문 래스커상을 수상했고, 이후 수십 년간 해당 분야 전체의 토대가 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그는 수년간 WEHI 소장을 역임했는데, 그 과정에서 메트칼프나 밀러가 이 연구소에 발을 들이기 훨씬 전부터 연구소의 연구 문화를 형성해 나갔죠. 1960년, 버넷은 후천성 면역 관용(acquired immunological tolerance)에 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 래스커상이 노벨상 위원회보다 몇 년, 심지어 10년 가까이 앞서 발견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예요.

래스커 재단(Lasker Foundation)의 1952년 앨버트 래스커 기초의학연구상 페이지

도널드 메트칼프 (1993년)

메트칼프는 혈액 줄기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조절하는 단백질인 콜로니자극인자(colony-stimulating factors, G-CSF 포함)를 발견한 공로로 래스커상을 받았습니다. 이 발견은 오늘날 매일같이 생명을 구하고 있는 기술인 현대 혈액 줄기세포 이식과 기증자 등록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어요. 메트칼프는 "콜로니자극인자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고, 헌신적인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경력을 쌓았습니다 — 그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른 기관으로 옮기지 않고 오직 WEHI에서만 몸담았거든요.

래스커 재단의 1993년 앨버트 래스커 기초의학연구상 페이지 .

자크 밀러 (2019년)

밀러는 에모리 대학교의 맥스 쿠퍼와 공동으로 기초의학연구 부문 래스커상을 수상했습니다. 밀러는 T세포와 그 기원인 흉선(thymus)의 역할을 규명했고, 쿠퍼는 B세포를 규명했어요 — 두 사람은 함께 림프구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두 개의 독립된 계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는 현대 면역학의 핵심 원리이자 백신 개발, 장기 이식, 자가면역질환 치료, 그리고 현대 암 면역치료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 밀러가 처음 T세포의 존재를 제안했을 때, 이 발견은 회의적인 반응에 부딪혔고 인정받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 이는 카탈린 카리코의 수십 년에 걸친 mRNA 연구가 훗날 백신 과학을 뒤바꾸기까지의 여정과도 닮아있는, 더디게 타오른 발견의 이야기입니다.

래스커 재단의 2019년 앨버트 래스커 기초의학연구상 페이지 .

2019년 래스커상 시상식에서 자크 밀러의 수상 소감 영상 .

내가 찾은 답

버넷, 메트칼프, 밀러를 하나로 잇는 것은 단순히 같은 주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적의 연속성이에요. 버넷은 연구소의 과학 문화를 형성했고, 메트칼프는 그 위에서 평생 연구를 쌓아 올렸으며, 밀러가 발견한 T세포와 메트칼프의 콜로니자극인자는 모두 같은 혈액 줄기세포에서 뻗어 나온 조혈(hematopoiesis)이라는 하나의 큰 이야기 속 서로 다른 두 갈래입니다 — 다만 콜로니자극인자는 림프구보다는 주로 골수계(myeloid) 세포를 조절한다는 점은 구분해둘 필요가 있어요.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이루어진 세 건의 서로 다른 발견은, 결국 면역계가 작동하는 원리에 관한 하나의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이어진 실타래였던 셈이죠.

이는 지속적인 조직 문화가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사례입니다. 노벨상이든 래스커상이든, 단 한 번의 수상은 적합한 인물과 적합한 시기만 맞아떨어지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나 거의 70년에 걸쳐 같은 연구소에서 세 차례나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무언가 — 더디고 어려운 질문을 끝까지 파고들려는 과학자들을 꾸준히 끌어들이고, 길러내고, 붙잡아둔 어떤 장소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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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에 관련된 참고 사항: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를 위한 항-TNF 요법을 발견한 공로로 2003년 래스커상을 공동 수상한 마크 펠드먼 경은 멜버른에서 수련받았습니다 — 그는 멜버른 대학교에서 의학사(MBBS) 학위를, WEHI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어요 — 하지만 그의 수상 연구 자체는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런던의 케네디 류마티스 연구소(Kennedy Institute of Rheumatology)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그는 멜버른에서 '수련받은' 수상자이지 멜버른을 '기반으로 한' 수상자는 아니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계보에서는 한 걸음 벗어나 있어요.